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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

세렌디피티 - 운명이란 건 합리화인가

by 마음 이야기 2023. 1. 20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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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렌디피티

Contents

    운명적으로 만난 운명론자

    영화의 제목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발견이라는 뜻입니다. 여기서 발견은 조금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. 그래서 이 영화는 뜻밖의 행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. 주인공 '조나단'은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러 뉴욕의 한 백화점에 방문합니다. 그는 선물을 고르던 중 까만 니트 장갑이 눈에 들어오고 그 장갑을 손으로 집는 순간 동시에 그 장갑을 잡는 '사라'를 마주합니다. 서로의 선물을 양보하던 조나단과 사라는 그 짧은 순간에 서로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. 장갑을 양보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사라는 조나단에게 디저트를 대접합니다. 둘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각자 애인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. 그런데 조나단과 사라는 각자의 소지품을 그 디저트 카페에 두고 와서 다시 카페로 돌아오고 다시 만나게 됩니다. 사라는 조나단에게 우리가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며 현실적으로 터무니없는 제안을 합니다. 그 제안은 조나단의 번호를 지폐에 적어서 아무 상점에서 그 돈을 사용하고 사라의 번호는 어떤 책 표지 안에 적어서 중고서점에 판매를 하는 것이었고 그 지폐와 책이 상대방에게 운명적으로 전달된다면 서로 연락하자는 것이었습니다. 조나단은 황당했지만 운명론자였던 사라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렇게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.

    우리는 우연일까 운명일까

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7년이 지났지만 조나단과 사라는 서로에 대한 그 미묘한 마음을 여전히 접지 못한 채 조나단은 사라가 번호를 적었던 책과 같은 책만 보면 표지를 열어보고 사라는 지폐만 보면 뒤집어서 확인하였습니다. 곧 결혼할 사람이 있었던 조나단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사라를 찾아 나섭니다. 그렇게 조나단이 사라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던 중 우연하게도 조나단은 사라의 그 책을 사라는 조나단의 그 지폐를 발견합니다. 결국 조나단은 결혼 당일 파혼을 하고 그날 사라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.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조나단과 사라는 결혼을 했습니다. 이 영화를 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결국 운명대로 되는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.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닿는 인연 중 어떤 사람이 운명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? 우리에게 운명으로 이미 정해진 짝이나 배우자가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그저 운명이 아닌 우연일 뿐일까요?

     

     

    운명은 결과가 아니다

    여기서 우리는 운명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. 이 영화 속 주인공 둘처럼 상대방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운명은 곧 '결국 만나게 될 사람'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. 만약 이처럼 운명이 특정한 대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운명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. 내 삶에 나타난 특정 사람을 운명이라고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정답을 알 수 없습니다. 그렇다면 우리는 운명이라는 것을 어떤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? 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. 즉 운명은 특정한 사건을 마주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 또는 사람을 통해 필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. 우리가 느껴야 할 그리고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무슨 일들을 통해서라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.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간단해집니다.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저 나의 삶에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여 그것들을 통해 운명적으로 느끼고 알아야 할 것들을 느끼고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.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식상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만약 이 힘든 환경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환경을 겪어내야 하는 것입니다. 우리가 각자 모두 다른 사람이듯이 운명도 각자 다르다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각자 다른 일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. 힘든 삶 속에서 우리는 주어진 환경의 불공평함을 얘기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듯이 운명이 있다면 우리는 불공평함도 필연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.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마땅히 운명적으로 받아야 할 것들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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